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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소통은 세월과 비례한다.

우리 아버님은
찐 경상도 분이세요.
결혼 전부터 엄청 저를 예뻐하셨거든요.
지금와서 🐻🐻히 생각해 보면
그 이유는 다른게 아니라 바로
"잘 들어주며 소통하기"였던거 같아요.

신혼 초에는 설거지라도 할라치면
싱크대 주변이 물난리가 날 정도로
살림도 서툴고 밥도 제대로 할 줄 몰라서
시어른들 저희집에 오시면
짜장면 배달하기 일쑤였던 제가
그래도 잘 하는게 있다면
이야기 공감하며 듣기였답니다.
두분이 하시는 얘기에
귀 기울이고
눈 맞추고
고개 끄덕이며 들으면
그게 그렇게 좋으셨는지
주방에선 어머님랑 가스렌지 앞에서
호박전 부치며 이야기 꽃이 피고
거실에선 아버님이랑 쉴 새없이
조곤조곤 이야기를 했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소통이 되더라고요.

며칠 전!
우 ~~웅~~~~
핸드폰이 울려서 보니
시아버님이 전화하셨네요.
"난데"
"네 아버님"
"거가 있잖아 자고 일났는데 양쪽 다리에 뭐가 나고 간지러븐데! 혹시 거 도진거 아이가? "
"아! 그래요?
"거가 거해갖고 거하이끼네 거해야 안되겠나?"
난 다 알아들음! ㅋㅋㅋ
"그래야죠! 아침 드시고 병원 가보세요!"
거가는 다리가
거해 갖고는 간지러워서
거하이끼네는 저번처럼 대상포진일지도 모르니까
거해야 안되겠나?는 병원에 가야되냐?
이 말입니다.ㅎㅎ ㅎ
우리 아버님은 "거" 이 한 단어로 모든 말씀을 하실 수 있는 능력자!
그리고 전 그 말의 뜻을 다 알아 들을 수 있다고요
우하하하^^

우 ~~웅~~~~
"네 아버님"
"거 갔다왔다."
"병원 다녀오셨어요?
뭐라 그래요?"
"거 뭐 거하다카드라! 걱정하지마라"
"다행이네요. 단순 피부염인가보네요. 약은요?"
"거서 주드라"
"아 약국에서 받았어요? 잘하셨어요^^"
"내 너희들 거않하도록 거하께!"
"아이고 아픈게 뭐 맘대로 되나요?"

물론 처음부터 알아 들었던 것은 아니예요.
처음에는 시댁에 가면
경상도 방언 1도 모르는 저를 앉혀놓고
어른들이 물어보셨죠.
"니 수금포 아나?
정구지 아나?
오봉 아나? 모르제?
니 앞산 가봤나? 안 가봤제?"
내가 몰라서 눈알만 굴리고 있으면 그게 그렇게 재밌으신지 두 분이서 깔깔 웃으시면서 알려주곤 하셨답니다.
수금포는 삽이고
정구지는 부추이고
오봉은 쟁반이예요.
앞산은 대구시에 실제로 있는 산 이름이라네요.
앞산공원도 있대요.
처음엔 신기하고 생소한 말들에 적잖히 당황한 적도 많았지만 일년 이년 십년 점점 세월이 가면서
말도 알아듣고 이젠 말이 아니라 "거"만으로도 알아 듣는답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거"의 높낮이만로도 이게 긍정적 말인지 부정적 말인지도 알아차려요.
하하하!

혹시나 가족간에 소통이 안되는거 같으세요?
소통은 세월과 비례하니까 잘 듣기 잊지 말고 더 살아 보세요~^^
경상도 아버님과의 에피소드를 떠올리던 중
소통은 세월과 비례한다는 생각이 들길래
끄적여 보았습니다.
부대끼며 함께 한 세월만큼
서로에게 교감과 이해와 소통을 가져다 주는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