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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아빠의 제주도 갑순이가 대신 갔네요

누구나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이 없듯이
우리 갑순이도 태어나보니 시추였겠죠.
첫 강아지를 잃고 실의에 빠져있던 우리 아빠는 강아지를 묻어준 집 뒤 산에 가서 매일 우셨대요.
그 소식 듣고 우리 시아버님께서 어디서 아기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다주셨는데 바로 우리 갑순이예요~^^
이제는 돌아가셨지만 홀로 사는 아빠에게는 자식보다 부인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죠.
우리 집에서 돌아가시면서 우리 부부한테 남겨주신 갑순이~♡

한 때는 갑순이가 너무 귀여운 나머지 출근하기도 싫었던 적이 많았어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갑순이랑 같이 있고 싶어서
누워계시는 아빠에게
아빠! 나 오늘 아프다고 하고
출근하지 말까?
하면 우리 아빠가 질색을 하시면서 힘없는 목소리로 그러면 못써 성실하게 살아야지 어서 출근해라 이러셨어요.
평생 일밖에 모르고 토요일 일요일도 출근하신 우리 아빠!
아빠는 왜 일요일에도 학교 가야 돼? 어린 우리들이 투정 부리면 농담으로 아빠가 학교 지켜야 돼서!
이랬던 일 중독자셨어요.

변변한 여행은 말할 것도 없고 제주도 한번 가본 적도 없으신 우리 아빠였는데...
아빠! 병 다 낫고 우리 꼭 비행기 타보자 갑순이도 함께 타보자
하면 손사래 치면서 아이고 무슨 비행기까지 타냐!
그저 고향에 계신 형님 한번 뵈러 가면 좋겠어. 했거든요.
그럼 비행기 타고 갑순이도 같이 고향갑시다~^^
그러면 고개를 끄덕이면서 웃고 좋아하셨는데 이제 이 세계에는 안 계시네요ㅠㅠ

우리 갑순이가 아빠대신 제주도를 왔네요.
산책을 11살에 배우고
제주도는 13살에 갔네요.
우리 갑순이 할머니인데
아주 씩씩하게 우리 집 적응도 잘해주고요.
이제는 우리 집 안방 침대까지 차지했을뿐더러
집사가 퇴근할 때 신발도 제대로 못 신고 집으로 튀어오도록 하고
회식도 싫어하게 하도록 교육시켜 놨네요.
근데 이런 갑순이가 저는 왜 좋을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빠는 안 계시지만 갑순이랑 함께 제주를 갔어요.
비행기도 잘 타고
케이지에도 잘 들어가 있고 공항에서도 잘 기다려준 기특하고 사랑스러운 갑순이~^^

아빠의 생전 단짝이었으니 갑순이가 가는 곳에 아빠도 계실 거라 믿어요.

아빠 저 보고 계시죠?
갑순이랑 비행기 탔어요.
아빠랑 왔으면 나 너무 좋아서 울었을 거고 우리 딸이 얼마나 살뜰하게 할아버지를 챙겨줬을까?
아쉽고 또 아쉬워요
그래도 갑순이 데려가요~^^
갑순이 있는 곳에 아빠가 있으니까요.

갑순아 우리 다음에 또 제주도 가자~^^
아프지 말고 잘 걷고 잘 먹고
아빠대신 더 오랫동안 우리 곁에 있어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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