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이 넘은 할머니께서 차리신 할아버지 제사상입니다.
얼마 전 허리도 다쳐서 몸도 불편하신데 그래도 기일은 꼭 지키시네요.
우리 엄마 큰딸인데 50에 먼저 저세상 가셨으니
제가 엄마대신 참석합니다.
우리 아저씨는 바늘 가는데 실 간다고 삼촌 옆에서 술이라도 따라드린다고 꼭 함께 가주는 것이 여간 고마운 게 아닙니다.
갑순이를 집에 혼자 둘 수 없어 함께 왔더니 처음 뵙는 할아버지 사진이 우리 아빠랑 비슷해 보였나 자꾸만 상앞에 가려고 하네요.
저 마음이 시큰했어요.
지난 10월 아빠 돌아가신 후로 아빠 쓰시던 방은 아예 들어가지도 않거든요.
이런 자리에 모이면 빠질 수 없는 것이 옛 추억담이죠.
할머니는 조금 전까지는 허리야 다리야 어깻죽지야 하시다가 옛이야기 나오기 시작하니 눈에서 빛이 나고 목소리가 카랑카랑 해지십니다~^^
여기 온 사람들 먹인다고 불고기에 갈비에 준비도 많이 하셔서 밥도 맛나게 먹고 원래 그러면 안 되는데
제 공황장애 빨리 낫게 해 주시라고 절하면서 할아버지께 빌었어요.
원래는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이래야 되는데...
할머니가 간직하고 계시는 저에 대한 추억은 하도 들어서 이번에 또 들으면 진짜 백번은 될 거 같지만 저는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가 않아요.
저는 청파동이라고 숙대 밑에 우리 외할머니한테서 어릴 적 자랐대요
엄마가 저를 낳을 때 집에 돈이 없어 외할머니가 저를 받아주셨대요.
엄마는 죽는다고 소리 지르고 이모들과 삼촌은 다락방에 올라가서
울며 기도까지 했대요.
할아버지는 그 당시 그 귀한 계란 프라이를 저만 주고 삼촌 이모들은 안줄정도로
저를 엄청 이뻐하셨대요.
제가 너무 울보여서 밥 먹을 때는 돌아가면서 식구 중 한 명이 저를 데리고 나갔다 와야 했대요.
저는 말도 잘해서 온 동네 사람들이 다 한 번씩은 안아봤다네요.
이 정도면 정말 자존감 뿜뿜 하게 자란 거 맞죠?
ㅎㅎㅎ
끝나기 전 제 남동생 가족도 참석해서 절을 올렸네요.
우리 외할아버지 덕분에 또 이렇게 가족이 모여서 웃으며 그 옛날을 추억할 수 있어 좋은 자리였어요.
제사는 격식보다는 모인다는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거 같아요.
이제는 제사나 차례도 시제라는 것으로 하나로 뭉치는 추세인듯한데
우리 할머니는 살아계시는 동안은 힘닿는 데까지는 지내실 모양이에요.
막지 않으려고요.
할머니가 하고픈대로 두려고요.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오히려 그것이 우리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추억하는 여러 방법 중 하나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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