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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여행의 매력

모든것을 냅다 던지고 떠나고 싶을 때 없으신가요?
누군가에게는 쉬울지 몰라도 저한테는 아주 번거로운 일이 되어버린 떠나는 일!
찐 집순이가 어딘가로 떠나고 싶을 때는 진짜 떠나줘야 됩니다.

사랑하는 아저씨도
연로하고 아프신 아빠도
제가 무지무지 좋아하는 갑순이도
그냥 놓아 버리고 훌훌 떠나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삼일만 아무것도 하지 말고
직장도 가지 말고
집 신경도 쓰지 말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생각도 하지 말고
이런 생각을 언젠가부터 하고 있더라고요.
제가요.
누구 눈치도 볼 필요 없고
가슴 졸일 필요도 없고
화가 날 일도 없고
시간의 구애도 안 받고
딱 그렇게요.

일 년을 마무리하는 12월의 끝자락에서 저를 돌아보았어요.
무엇이 남았을까요?
한심했습니다.
어이가 없었네요.
도대체 뭘 하고 산건지...
발전은 커녕 뒤로 안가는게 다행인 삶이었네요.
맨날 불평 불만에
혼자서 지구 근심 다 지고 있는 듯이 살았네요.
그러니 당연히 없던 병도 생기죠.
하지만
그대여 걱정 말아요.
그대에겐 아직 든든한 지원군 아저씨와
또 든든한 지원군 딸이 있으니까요.

드디어 딸과 둘이 경주로 왔어요.
5년 전 왔던 경주에
다시 와 보았어요.
얏호!
너무 좋아요.
우리 집은 나 대신 아저씨가 지키기로 했어요.
우리 아빠 식사랑 약
그리고 주사
갑순이 밥이랑 산책까지
완벽히 알바해 준다네요.
ㅋㅋㅋ
저는 딸이 준비해 준 여행지로 딸과 함께 떠났어요.
경주는 5년 전 제가 수술하고 나서 방문했던 도시에요.
그 때는 딸이 대학생이었는데
이젠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숙소도 알아서 예약하고 장거리 운전도 거뜬히 하네요.

오랜만에 하늘도 실컷 보고
오랜만에 바람도 실컷 느꼈습니다.
오랜만에 눈이 부셨네요.
언제 벌써 겨울이 성큼 와 있더라고요.
갑자기 가슴이 쿵쿵 뛰네요.
인생 참 재미없게 사는 사람이 바로 계절이 오는 줄도 가는 줄도 모르고 덥다! 춥다!만 이야기 한다더니 제가 그러고 있었더라고요.

딸과 함께 맛나는 식사를 나누고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 받고
별거 아닌 일에도 깔깔깔 웃으며 꼬박 이틀을 즐겁게 보냈습니다.
이게 저한테 얼마나 큰 치유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방광증후군으로 세 달째 시달리고 있는데 여행지에서만큼은
그 기분 나쁜 그 찌릿함이
안 느껴지는거에요.
의사 선생님이 매사 긴장하지말고 스트레스 받지말고 신경쓰지말고 그래야 빨리 나아요! 했는데
그게 제 성격 탓인지 쉽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여행이란 것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어요.

멀리 올 수록
일상과 멀어질수록
여행이 더 여행답다 했던가요?
요 자그마한 한옥에 머무르면서
한 해를 돌아보고
새 해를 다짐했습니다.
인력으로 안되는 일에
아둥바둥 하지말자.
아빠의 상태는 안타깝지만 허황된 기대는 버리자.
뭐든 완벽하려고 기 쓰지 말자.
지키려고 안간힘 쓰기보다 내려놓고 편해지자.
나 자신에게서 한 발 물러서서
나를 좀 바라보자.

저한테는 치유의 도시인
이 곳 경주에서 차분히 2022년을 돌아보았네요.
아쉽지만 너를 보낸다.
나의 2022년!
그리고 다짐해 보아요.
새로운 해에는
좀 더 많이 웃기를!
좀 더 나에게 말을 많이 걸기를!
그리고 순리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기를!
할 수 있겠죠?

돌아오는 길에 아저씨 주려고 경주빵 사왔더니
엄청 맛나게 먹으면서
안 사오면 삐치려고 했대요.
ㅋㅋㅇㅋㅇㅋ
아빠는 제가 안 보이니까 계속 어디갔냐? 찾으셨대요
내가 경주갔다 온다고 하니까 조심있게 잘 다녀오라고 당부까지 하시곤 곧 잊으신게지요.
ㅎㅎㅎ
저 없는 동안 주사도 맞고 치료사랑 운동도 하셨대요.
갑순이는 문 열고 들어서니 버선발로 현관에 나와 꼬리치며 뛰어오르네요.
이제 다시 원래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마음은 그 전보다 훨씬 가볍네요.
이게 바로 여행의 매력이죠.
치유의 도시 경주에서 2022년을 정리해 보고 돌아오는 2023년을 맞이할 다짐을 하고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