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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엄마! 그 때 숟가락 안 줬더라!

소파에서 같이 티비를 보다가 딸이 문득 생각 났다는 듯이
"아! 맞다! 엄마 그 때 나 수저 안 줬더라!"
"응? 언제?"
"수능 날!"
"뭐?"
"수능 날에 수저 안 줬다고."
"진짜? 근데 왜 지금 얘기 해?"
"잊어버리고 있었어."
2015년 11월 수능 끝나고 2주가 훌쩍 지났을 때 나온 얘기다.
헉! 어머나!
"그래서 어떻게 했어?"
"야! 숟가락 두 개인 사람~~~~
했더니 어떤 애가 자기꺼 줘서 그걸로 먹었어."
"그럼 걔는?"
"아! 걔는 도시락이 안 열려서 안 먹는다고 수저 나 준거야"
"왜 안 열렸을까?"
"아마 보온 도시락 뚜껑 닫을 때 김 안 빼고 걍 닫았나봐. 그러면 잘 안열려 엄마. 그리고 걔 어차피 속 안좋다고 안 먹으려고 했었대 "

지금 생각해 봐도 아찔했던 사건!
밥도 아니고 죽을 사다가 싸 주면서 수저를 깜박하고 안 넣은 것이다.
우리 딸은 또 그걸 2주나 지나서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듯이 얘기를 하고!
딸도 딸이지만 새벽밥 지어서 고이 보온통에 넣어 보내셨을 그 어머니는 나중에 뚜껑이 안 열려서 못 먹었다고 얘기를 들으면!
아고고 ...
엄청 미안하면서도 웃기면서도 우리 아이도 참 낙천적인 아이구나 싶었다.

이상하게 잘 해야지! 하고 맘 먹은 날에 더 실수를 하게 된다.
신혼 초 시어른들 오신다 하면 내도록 잘 되던 밥이 설어서 자장면 시켜드린 적도 있었다.
다행히도 시아버님이 그런걸로 노여워하기보다는 귀엽게 봐주셨지만 말이다.
고3이라고 공부하는 딸 옆에서 지켜주기는 커녕
맨날 늦게 퇴근에 잠자기만 바빴던 엄마였는데
수능 날까지 사고를 친 것이다.

너무너무 미안한 맘에
"다음엔 꼭 넣어줄게."
했더니
"엄마! 나 또 수능 보라고? 으악!"
푸하하하!

2020년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올 해 수능은 코로나 여파로 연기되어 12월 3일에 치뤄진다고 한다.
수능 볼 자식도 없는데 이상하게 수능 때가 다가오면 전국 수능생들이 측은하고
안스럽고 미안하다.

지금은 바뀌었지만 얼마 전까지 내 좌우명이
'그 순간에 최선을 다 하자'였는데
ㅋㅋㅋ 최선을 다 해도 실수할 때가 있다.
게다가 딸이 수능을 다시 안 봤으니 실수를 만회할 기회도 없었다.
가끔 딸이 집에 놀러오면 그 때 얘기를 하면서 지금은 하하 호호 웃지만
그 당시에는 자괴감 쩔었었던 사건!
새내기 사회인이 된 우리 딸수능을 봤을 때 에피소드가 떠올라서 끄적거려 봤다.
아! 그리고 지금 내 좌우명은 '몸과 마음이 허락할 때까지만 최선을 다 하자!' 이다.
TMI 죄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