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갑순이는
처음 알았을거예요.
가을이 이렇게 아름다운지!
가을이 이렇게 바스락대는지!
발바닥에 느껴지는 낙엽의 촉감도 처음 알았을 거예요.
코 끝이 쌔한 가을 밤의 공기도요.
그래서인지
요즈음은 퇴근하면 아빠랑 저녁식사도 다 마치기 전부터 현관앞에 버티고서서 문과 아저씨를 번갈아 보면서 빨리 나가자고 무언의 시위를 한답니다.
그러면 맘 약한 우리 아저씨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채비에 나서죠.
갑순이가 아빠집에서 살 때는 젊은 혈기에 집을 세 번이나 나갔다네요.
정확히 말하면 집을 나간게 아니라 아빠가 안고 나갔다가 놓쳐버린거죠.
예나 지금이나 몸이 약한신 우리 아빠는 달아나는 강아지를 쫒아갈 여력이 없어 포기했는데
글쎄 갑순이가 세 번 모두 집을 찾아 왔대요.
처음엔 돼지 뼈다귀를 물고 왔고
그 다음엔 현관 문을 발로 긁더래요.
마지막엔 연애를 하고 돌아와서는
새끼를 네 마리나 낳았죠.
어느날 아빠집에 갔더니
거실 반이 펜스가 쳐져 있고
갑순이 두 배 만한 검은 강아지들 네 마리가 마구 뛰어 다니고 그 사이 갑순이가 지쳐 있길래
"아빠! 이 강쥐들은 모예용?"
오마나 세상에!
갑순이 새끼들이었어요.
헐~^^
에미도 감당이 안되는 새끼들~^^
할 수 없이 시골 동생네가 데려갔더랬죠.
갑순이가 그 때 질풍노도의 시기였나? ㅋㅋ
하여간 세 번 집 나갔다 오더니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걸 실감했는지 ㅋㅋㅋ
그 뒤로는 문을 열어놔도 절대 나가지 않았대요.
물론 산책이란 것도 없었고요.
그러니 10년만에 제대로 된 산책을 처음 배운 갑순이가 얼마나 좋아할지는 짐작이 가시죠?
나가면 꼬리는 살랑 살랑 걸음은 쫄랑쫄랑!
달릴 때는 개가 아니라 말이되고요.
온 길가 냄새는 다 맡아야 되고요.
지나가는 친구는 다 불러 세워야 되고요.ㅋㅋㅋ
지나가는 자전거는 갑순이의 라이벌입니다.
어쩌려고 같이 달려요.
낙엽 쌓인 공원 산책로를 함께 산책할 수 있게 갑순이가 아저씨와 나에게로 와 주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그냥 보기만 해도 사랑스러워서 미소가 지어져요.
예전에 강아지 털이 불편해서 아빠집 가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던 제가 이제는 갑순이 옆에 자고 싶어서 베개를 갑순이 곁으로 가져간다니까요. ㅎㅎ
털이요? 그게 뭐죠?
개가 털이 날렸었나?
에구구 털 걱정은 건조기 케어시스템에서 알아서 해 주잖아요.
갑순이가 온 뒤로 우리 아저씨는
저보고 "갑순이 신경 쓰는 만큼
나도 좀 쳐다봐주라!~^^"하면서
투정부리면서도 저의 그런 모습이 좋아보이는지 새벽마다 출근전에 침대 끝에 자고 있는 갑순이를 제곁에 뉘여주고 간답니다. ㅋㅋ
제가 아기 키우는 것처럼 보인대요.
10년 동안 아빠한테 반려동물이었던 갑순이가
이 가을에 우리 부부에게도 기쁨을 주네요.
갑순이는 알까요?
저의 마음을요?
저만치 앞서가는 뒷모습이 왜케 아름다운건지...
매일매일이 뭉클합니다.
"갑순아~~~ 고맙다!"
갑순이의 가을은 이렇게 깊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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