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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금연과 도파민

우리 아저씨랑 결혼식 앞두고 야외촬영 하던 날
여주 영릉에 낙엽이 흩날리는 가을날에 가서 촬영했거든요.
둘 다 연예인도 아니고 게다가 사진 촬영사가 제 직업상 알게 된 동갑내기 친구였으니 저는 촬영이 엄청 민망했죠.
우리 아저씨는 나이트도 싫어하고 노래방도 싫어하는 경상도 찐 유교보이인데 저보다 더 민망했겠죠?
거기다가 아저씨 없이 저 혼자 가서 고른 야외촬영 턱시도는 순전히 제 취향! 그야말로 금박 나무 잎사귀가 쭉쭉 뻗어있는 휘황찬란한 복장이었으니 우리 아저씨 당일날 옷 받아보고 순간 스치는 당혹한 표정
ㅋㅋㅋ
웃으세요
허리 돌리세요
얼굴 왼쪽으로
행복한 표정!
다 할 수 있었는데
서로 그윽하게 마주 보세요!
요거! 요거가 어찌나 어색하던지...
저는 왜 이렇게 부끄러웠는지 몰라요.
마치고 나서 다시 한번 찍으면 잘할 수 있을 거 같았던 오묘한 감정들!
그때 우리 아저씨가 낙엽이 무성한 영릉 숲가에 양다리를 벌리고 무릎에 양팔을 펴서 얹은 자세로 담배를 피우며 앉아 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섹시해 보이더라고요.
평소에도 담배 물면 멋있고 또 제 코에는 낙엽 타는 냄새로 나니 그것도 좋고
지금 생각하면 제뇌에서 도파민이 엄청 나온 거죠?
ㅋㅋㅋ
결혼 30주년인데 우리 아저씨 담배 끊은 지 1년이 되었어요.
작년 2월 금연 패치를 직접 사서 저녁마다 붙여가며 노력하는 모습이 짠하기도 하고 또 한편 멋있기도 하고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을까?
내심 두근두근 했는데 벌써 일 년이 되었네요.
담배 피우고 싶지 않냐?
금단증상 없냐?
거의 매일 물어보았죠.
그리고 꼭 물어본 말!
아저씨 담배 왜 끊은 거예요?
여러분~^^
뭔가 로맨틱한 대답 있잖아요.
너를 위해서~
사랑하는 사람이 싫어하는 건 안 하는 거야~
아니면 나이 듦에 대한 걱정이라든지...
이제 건강 챙겨야지
아프면 나만 손해야
뭐 이런 대답도 좋았을 텐데요
우리 아저씨의 대답은
돈이 없어서...
그리고 뒤에 꼭 덧붙이는 말
나중에 부자 되면 다시 피워야지!
ㅋㅋㅋㅋ
어이상실이죠~^^
근데 저는 왜 그 대답이 위트 있게 받아들여지는지...
현실적인 이유 로맨틱한 이유를 다 포함한 우리 아저씨만의 유머스러운 대답~^^
금연한 지 2년째가 되어가는데 내년 이맘때
같은 질문을 하면 또 어떤 재치 있는 대답을 할까요?
여하튼 우리 아저씨를 바라보는 제 뇌에는 아직도 도파민이 나오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