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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오빠가 고장난 썰

그 날 딸의 그 오빠(남친)는 잠시 고장이 났었다고 하네요.
"크하하하! 엄마! 주말에 오빠랑 데이트가 있었거든?
맛있는데 가서 밥도 먹고 분위기 좋은 카페도 가려고 만났는데 ....글쎄 오빠가 잠시 고장이 난 거야!"

이야기인 즉슨 그 날 오빠네 회사 사람이 결혼을 하는 날이었는데 뭐 가까운 사이는 아니어서 오빠는 축의금만 얼른 내고 얼굴만 잠깐 비추고
데이트를 할 계획으로 딸을 데리고 식장에 갔다네요.
오빠는 다 계획이 있었나봐요.
그런데 막상 가니 회사 사람들 만나고 같은 팀원들에 윗분들도 계시고 옆에 누구냐 애인이냐 소개시켜라 여기까지 왔는데 식 보고 밥 먹고 가야지... 하면서 시간은 점점 흐르고 우리 딸은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좀 뻘쭘하기도 하고 흘깃 보니 남친은 딸에게 얘기치 않게 생긴 그 상황이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더래요.
게다가 거기가 전통혼례식장이어서 식만 다 보는데도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네요.
당연히 데이트 계획에는 차질이 생기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결혼식 참관이라는 일정이 끼어들어버린거죠.
"오빠 괜찮아 결혼식 보고 가지 뭐!"
하지만 오빠는 식 보는 내내 표정 안 좋고 안절부절하면서 우리 딸 앞에서 뭔가 태엽 풀린 시계처럼 고장이 났더라는거예요.
딸은 화가 나기는 커녕 그런 남친이 너무너무 귀여웠다네요.

저도 상상해 봐요
우리 아저씨 고장나는 모습!
만약 어느날 딸이 갑자기 남친을 떡하니 데려와서는 소개한다고 아빠 앞에 마주 앉혀 놓으면 어떻게 고장 날지 안 봐도 비디오네요.
아! 둘 다 고장나겠네요.ㅋㅋㅋㅋ

제가 신혼 때 아파트로 분가하고 친정 부모님이 우리 사는 모습 보신다고 처음 오신 적이 있었어요.
그땐 아이도 없었을 때예요.
집에 과일이 없길래 저랑 엄마랑 둘이 아파트 앞 슈퍼에 갔다 왔었거든요.
한20분 정도?
그 때 집에 남겨진 두 남자!
거실에 앉아서 말 한 마디도 않하고 있었다네요.
20분이 200분 처럼 길더랍니다.
이거 두사람 다 고장 났었던거 맞죠?
쿠와왕~^^^^

저도 그럴 때가 있거든요.
작은 일이라도 제가 계획한대로 안되거나 갑자기 예상치 못한 상황이 전개되면 순간 뇌가 얼어붙으면서 표정 관리 안되면서 시간이 느리게 가고 말문이 막히는 순간이 오죠.

우리 딸은 오빠에게서 그런 모습을 발견하고 그걸 고장났다고 표현한거예요.
딸이 의도한 상황도 아니고 데이트도 늦어지니 화가 날 만도 한데 선선히 웃으며 넘어간 것은 물론 오빠의 고장난 모습이 매력적이었다는건
아마도 지금 딸의 뇌 속에는 도파민이 가득 차 있나 봅니다.
이거 사랑 맞는거죠?

"딸아! 너의 연애를 응원한다."
"딸의 오빠님! 가끔 고장 나도 우리 딸이 좋다네요.
응원합니다.
우리 딸을 늘 행복하게 해 준다면서요?
고마워요.
고장 나지 말고 알콩 달콩 잘 사귀세요."